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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존슨, 근대의 탄생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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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상품명 폴 존슨, 근대의 탄생 2
정가 ₩40,000
판매가 ₩36,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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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살림Math
ISBN 9788952228215
출간일 2014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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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우리의 현재는 단지 15년(1815~1830)만에 만들어졌다.

보편적으로 지식계에서는 근대의 시작을 18세기로 본다. 우리는 흔히 중세의 오랜 신 중심의 세계관이 깨지는 14~16세기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을 지나 인간 이성으로 구습을 타파하는 계몽주의와 과학 기술의 발전이 가져다 준 산업혁명, 그리고 구체제를 전복시키고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천명한 프랑스 혁명으로 근대의 문이 열어젖혀졌다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영국이 자랑하는 저널리스트이자 역사학자인 폴 존슨은 19세기 초반, 1815년부터 1830년까지의 15년 동안 근대가 탄생했다고 말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사회의 기반이 바로 이 15년 동안 다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폴 존슨, 근대의 탄생』에서 폴 존슨은 어떤 근거로 그렇게 말하는 것일까?

저자는 1815년 6월 18일 워털루전투에서 나폴레옹의 프랑스 군이 영국의 웰링턴이 이끌었던 영국-프로이센 연합군에게 패배하여 나폴레옹이 완전히 퇴위할 때까지는 근대의 개화가 늦춰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설명한다. 길고 파괴적이었던 나폴레옹전쟁이 근대의 실질적인 탄생을 늦추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건 그 전쟁이 끝난 1815년부터 영국과 유럽 대륙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급격하고도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을 보면 확연해진다.

목차

제7장 힘과 기계와 시각표현
안전등의 개발 경쟁│데이비의 화학 강좌│전기에 매료된 셸리│패러디와 전기역학│야외 과학자 돌턴│지질학의 발전│배비지의 자동계산기│산업화와 과학 기술 진흥│대영제국을 만든 기술자들│관행만 고집하는 노동조합│경이로운 생산 설비│템스 터널 계획│초창기의 철도│과학과 미의식│신경계통의 연구│삽화책과 인쇄기술│풍경화 제작의 새로운 기법│장인 의식이 강한 화가들│환영을 말하는 블레이크│파머와 고대인│후원자 시대의 종언│대중 미술관의 등장│돈벌이가 되는 개인 전시회│사진의 발명│천재 보닝턴│평가받지 못한 컨스터블│프랑스가 좋아한 영국 그림들│들라크루아의 활약│터너가 준 충격│빛과 색의 마술사

제8장 무질서의 가면극
안데스 산맥을 넘은 볼리바르│스페인 제국의 문화유산│초기의 반란과 군벌의 출현│볼리바르의 출신 배경과 성격│스페인 재통치의 실패│영국과 미국의 간섭│먼로 선언과 캐닝│볼리바르의 실패│파라과이의 고집│최초의 다민족 국가 브라질│스페인의 자유주의와 프랑스의 간섭│이탈리아의 비밀 결사│바이런의 이탈리아 생활│터키가 지배하는 방식│그리스의 산적들 │바이런의 죽음│무하마드 알리와 이집트│터키의 서구화│강대국에 의한 평화 유지│나바리노 해전│근대화의 발목을 잡은 민족의식

제9장 상쾌한 공기와 나른한 시럽
즐겁게 걷는 사람들│최초의 축구 경기│크리켓 경기│권투와 도박│경마의 발전│무어크로프트의 중앙아시아 탐험│무어크로프트의 ‘대전략’│애견가와 동물 보호 운동│어린 노동자│바이런의 육아법│공작 집의 아이들│밀과 브라우닝의 어린 시절│죄책감에 시달린 키르케고르│어떤 교육방식이 좋은가│리스트와 멘델스존│비운의 베버│의학의 진보와 한계│사체 도굴꾼의 일기│돌팔이 의사와 특효약│정신병 치료│늘어나는 자살 사건│인기를 끈 해수욕장│다이어트 열풍│푸짐한 저녁 식사│마약의 유행│아편중독과 매킨토시│과학자들의 아편│아편의 국제무역│청나라의 아편 유행│중국의 구조적 약점│비밀결사의 출현│다가오는 아편전쟁의 그림자

제10장 거대한 그림자
제1차 버마전쟁│영국의 인도 지배│인도 지배의 정당성│필리핀과 인도네시아│문호를 닫은 일본│돈 걱정하는 쇼군│국수주의 사상의 발전│독일 민주주의의 대두│전쟁을 찬양한 철학자 헤겔│역사학의 유행│생시몽의 착각│콩트의 실증주의│유토피아를 꿈꾼 지식인들│벤담의 공리주의│대중을 불신한 불쌍한 콜리지│드 메스테르의 교황 옹호론│러시아 제국의 군대 체제│러시아의 비밀경찰│흑인의 후예 푸슈킨│데카브리스트 혁명│니콜라이 1세의 철권통치│황제와 시인│혁명 신화의 탄생

제11장 대폭락!
로스차일드 가문의 금융 네트워크│대출을 늘려라!│1819년의 금융위기│존 마셜의 등장│금본위제도로의 전환│근대적인 경기 순환의 시작│근대적인 형법 개정│노동조합 합법화│생활수준의 개선│미국 생활양식의 향상│소비 사회의 출현│프랑스 출판 산업의 발달│라틴 아메리카의 공채 남발│광산 개발 붐│넘쳐나는 투기성 자금│1825년의 금융위기│휴지가 된 라틴 아메리카 국채│버블 경제의 여파│빚에 쪼들린 베스트셀러 작가 스콧│파산에서 살아남은 디즈레일리│주식투자에 실패한 파머스턴│곡물법 폐지

제12장 민중의 등장
부정부패로 얼룩진 미국 정치계│잭슨 장군의 선거운동│근대적인 선거운동의 시작│‘더러운 거래’의 대통령 선거│애덤스와 클레이의 뒷거래│아일랜드의 문제와 최초의 대중운동│다니엘 오코넬의 대중운동│변호사에서 아일랜드 민족지도자로│선거에서 압승한 오코넬│가톨릭교도 해방령│미국 민주당 창당│타락한 미 대통령 선거│조직 정치 시대의 개막│잭슨의 승리│엽관제도의 폐단│페기 이튼 사건│커져가는 남북의 대립│막강한 언론 파워의 등장│프랑스 언론인 출신의 역사가들│부르봉 왕조를 둘러싼 이념 전쟁│낭만주의의 새 바람│오페라 극장의 근대화│낭만주의로 돌아선 빅토르 위고│젊은 세대의 문화적 테러│프랑스의 경제위기│샤를 10세의 보수 반동 정치│7월 혁명과 언론의 승리│7월 왕정의 성립│스위스의 자유화 바람│벨기에 독립│폴란드 독립투쟁의 실패│쇼팽의 낭만주의│스윙 폭동과 유화 정책│파머스턴의 사임│브로엄의 재선 승리│토리당의 패배│의회 개혁과 양당제도의 확립│휘그당 정권과 관직 분배│변화하는 세계

옮긴이의 말
미주

저자소개

폴 존슨 , 명병훈

출판사리뷰

러시아에서 이루어진
유토피아 실험

유토피아주의라는 미명 하에 끔찍하고 비인간적인 실험이 이루어진 것도 이 시기가 처음이었다. 그 실험이 이루어진 곳은 공교롭게도 러시아였다. 러시아의 황제 알렉산드르는 자기 소유의 광대한 땅에서 유토피아 건설에 착수했다. 그는 게으르고 더러운 러시아에도 질서와 청결이 강제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황제는 러시아 전역에 군대 공동체를 만들고 그 공동체에 자신의 신념과 이상을 반영하기로 했다. 이 계획은 1810년에 시도되었다가 잠시 중단됐는데, 1816년에 다시 재개됐다.
황제는 노보로시스크 지역에 1개 보병대대 규모의 자유 소작농 집단을 강제이주시켰다. 그리고 이후 5년 동안 비슷한 공동체를 노브고르드 지방에 90개, 모길료프에 12개, 우크라이나에 36개, 그 밖의 지역에 240개를 더 만들었다. 이들 지역에서 어린아이를 포함해 무려 남녀 75만 명이 외부와는 완전히 단절된 채 살게 됐다. 일단 이 공동체 안에 들어가면 아무도 외부로 나올 수 없었다. 이 공동체에서만 적용되는 24권짜리 법전도 있었다.
외부로 선전되는 이 공동체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많은 수의 어린이들이 잘 지어진 학교 건물에서 교육을 받았고 학교, 병원, 소방서, 당구장, 독서실, 예배당, 식당 등이 잘 갖춰져 있었다. 농부의 집집마다 정식 화장실이 있고, 그 공동체의 곡물수확량 증가는 엄청나 보였다. 하지만 실제는 달랐다. 병원 마루는 반짝반짝 하게 닦여있었지만 환자들은 마루를 어지럽혀 벌을 받을까봐 그 마루를 밟지 못했다. 대신 창문을 통해 병원을 출입했다. 그런 방식으로 대다수의 시설이 ‘한 번도 사용되지 않은 채’ 시찰용으로 관리됐다. 곡물수확량이 증가했다는 보고서는 꾸며진 것이었다. 실제로는 엄청난 국가의 자금으로 메우고 있을 뿐이었다. 황제의 명을 받은 관리자들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매질로 사람들을 다스렸다. 공동체를 관리하는 장교들은 착복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착복했다. 그렇게 공동체는 부패했다.
당연히 1819년부터 여기저기서 반란이 일어났다. 그러나 황제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총책임자인 아락체예프에게 이렇게 말하며 격려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내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노브고로드에 이르는 길을 시체로 뒤엎어야만 할지라도, 공동체들은 올바로 세워질 것이다.” 이 끔찍한 실험은 황제 알렉산드르가 죽었을 때에야 비로소 끝날 수 있었다.
근대 최초의 사회개혁 실험은 이렇게 끝났다. 이 실험은 미래에 대한 불길한 전조나 다름없었다. 독재자 한 사람의 단순한 기분에 따라 100만 명의 목숨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체제가 러시아에서는 얼마든지 쉽게 도입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던 것이다. 불행히도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실험은 러시아 땅 전체를 뒤덮는 공산전체주의의 악몽으로 현실화되고 말았다.

근대의 산물,
노예제도

한편 미국 남부에서는 또 다른 끔찍한 제도가 근대의 기술문명과 함께 태어났다. 목화 때문이었다. 양모나 실크는 아무리 가공처리를 해도 기름기가 남는데 반해 목화로 만든 옷은 깨끗하고 시원했다. 단지 목화실을 만들기 위해 노동력이 무척 많이 들었다. 그러나 방적기가 개발되면서 생산성이 증대됐다. 1780년대 산업혁명을 통해서였다.
1815년이 되자 기술개발이 가속화되어 기계 가동 속도가 10배 이상 올라갔다. 가격을 급속히 떨어뜨릴 수 있게 되자 영국의 면직물은 세계로 뻗어나가게 됐다. 문제는 영국에서는 목화가 재배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중동, 이집트, 인도에서 수입을 했다. 브라질과 서인도 제도에서도 목화가 들어왔다.
그러다 결정적으로 미국의 엘리 위트니가 목화씨와 보풀을 분리하는 기계, ‘조면기’를 개발하게 됐다. 놀라운 발명이었다. 1명이 하루에 목화를 1파운드를 생산하다가 50파운드를 생산할 수 있게 됐다. 게다가 1815년 이후 외륜증기선이 미국 남부에 보편화됐다. 목화를 저비용에 대량으로 얼마든지 실어 나를 수 있게 된 것이다. 당연히 미국이 영국에 목화를 수출하는 주요 공급국이 됐다. 목화 산업은 이제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됐다. 매년 전년도 대비 7퍼센트씩 성장하는 유망 산업이었다. 미국의 최대 수출품이 된 것이다. 그게 미국 남부의 ‘노예제’를 대두시킨 결정적인 원인이었다. 그러니 미국 남부의 노예제는 러시아의 농노제처럼 과거의 유물이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커다란 착각이다. 산업혁명이 가져온 면직물 산업과 그 재료를 대기 위한 목화산업의 발달이 ‘노예제도’를 정착시킨 거였다.
영국 해군이 세계 경찰로 떠오르게 된 것도 이 ‘노예제도’ 때문이었다. 노예를 부리는 것은 미국만이 아니었다. 유럽 각국에서도 노예를 이용해 돈을 그러모았다. 노예 800명을 데리고 대서양을 건너 동에서 서로 한 번만 장사를 떠나면 금화 6만 파운드의 순수익이 남았다. 대규모 농장에서 노예를 부려 얻을 수 있는 이익도 매우 컸다. 그러니 유럽의 나라들은 어디라고 할 것 없이 노예를 부렸다.
그러자 노예제에 대한 반대의 움직임도 함께 일어났다. 당시 가장 일반적인 노예제 보이콧 운동은 ‘설탕을 먹지 않는 것’이었다. 마치 요즘 의식 있는 소비 운동으로 대두된 ‘공정 무역 상품’을 활용하는 방식의 초창기 형식 같다. ‘만약 10명 중 1명만 설탕 보이콧에 동참하면 서인도 제도의 노예제는 없어질 것이다.’ 이렇게 대중들을 설득했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영국에서는 노예제를 폐지하기로 결정하고 관련 법을 정비했다. 사반세기가 걸린 일이었다.
문제는 영국이 노예제를 폐지했을 때 경쟁 국가들이 반사이익을 얻게 된다는 점이었다. 다른 국가들이 노예를 매매하지 못하도록 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영국 해군이 세계의 경찰로 나서게 됐다. 노예를 공급받는 나라에 노예제를 종식하도록 압력을 넣는 것은 무리였다. 대신 공해상에서 노예무역을 하지 못하도록 하고 아프리카에서 사람들을 모아 수출하는 것을 막는 방법을 썼다.
그렇게 나서게 된 영국 해군은 세계의 경찰 역할을 떠맡게 됐다. 당시에 영국의 해군력과 맞설만한 나라는 없었던 까닭이었다. 남대서양과 태평양의 남부 및 중부, 그리고 남양제도는 영국이 통제하게 됐고, 1815년부터 수십 년 동안 인도양은 영국의 호수가 됐다.


나폴레옹의 모방자들

한편 근대 유럽 최초의 독재자 나폴레옹은 근대가 탄생한 바로 그 15년 동안 대서양 건너편 라틴 아메리카 대륙에 수많은 모방자들을 만들었다. 대표적인 사람이 1819년 6월 잡동사니 퇴역 군인들과 부녀자, 어린이들을 이끌고 제대로 된 지도도 없이 안데스 산맥을 넘어 콜롬비아로 쳐들어간 사이먼 볼리바르였다. 알티플라노 산을 넘은 볼리바르는 스페인 지배하의 콜롬비아 심장부로 공격해 들어갔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일단 보고타에 입성한 뒤에는 잔학해졌다. 거리 광장에서 포로로 잡은 반대파의 병사들을 일렬로 세워놓고 총살했다. 이런 처형방식은 이후 라틴 아메리카의 전통처럼 굳어졌다.
라틴 아메리카의 반식민운동 지도자들이 이처럼 영웅적 행위와 야만적 행위가 혼재된 리더십을 보인 것은 바로 나폴레옹이 전수한 것이었다. 혁명기의 프랑스에서는 자유론자의 수사적인 기교와 형식상 대단히 민주적인 제도를 대량 학살을 서슴지 않는 폭정을 통해 관철시키려 했다. 나폴레옹에 와서 그런 경향은 극에 달했다. 그런 특징이 급속하게 라틴 아메리카의 스페인령 식민지에 이식되었던 것이다. 볼리바르를 비롯한 라틴 아메리카 식민지의 ‘애국자’들은 미국 헌법을 연구하고 프랑스의 ‘권리장전’을 읽었다. 그리고 나폴레옹을 모방했다. 저자는 이를 두고 ‘거대한 가면극’이라고 불렀다.
그들의 생각과 행태에는 20세기에 두드러지게 나타날 반식민주의 논리가 그대로 담겨 있었다. 겉으로는 민주주의를 표방하며 식민지 해방을 추구했지만, 그 뒤편에는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 독재가 또아리 틀고 있는 것, 오랜 남미의 고질적인 문제 역시 1815~1830년에 만들어졌던 것이다. 라틴 아메리카의 독립과, 독립 때의 폭력적이며 불안정한 형태는 나폴레옹이 남긴 부정적 유산 중에서도 가장 오랫동안 남은 유산일 것이다. 이 나라들에 100년 동안 독재라는 패턴을 장착시켰기 때문이었다.


근대 세계를 탄생시킨
금융, 그리고 대공황

1815년 나폴레옹전쟁이 끝났을 때 네이선 로스차일드는 런던 금융계의 거목으로 등장했다. 동생 제임스는 파리 금융계를 장악했다. 맏형 암셸은 프랑크푸르트에서 로스차일드 가문의 본점을 맡았고, 넷째 잘로몬이 빈 지점을, 1821년 다섯째 카를이 나폴리에 은행 지점을 개설했다. 로스차일드 가문의 전유럽을 잇는 금융 네트워크가 완성됐던 것이다. 이때부터 로스차일드 가문은 국제 금융계를 좌지우지하게 됐다.
사실 금융은 근대 세계를 탄생시킨 결정적 요인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그 시스템이 태동한 시기도 1815~1830년의 15년간이었다. 특히 미국은 금융 시스템을 가져와서 강대국으로의 발전에 밑거름으로 삼았다. 그로 인해 엄청난 인플레이션을 맞게 되기도 했고 1819년에는 치명적인 금융 위기를 겪게 되기도 했다.
신용거래와 주식거래가 늘어나면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투기성 자금과 그로 인한 버블경제도 이 시기에 처음 경험하게 됐다. 1820년까지의 경제 성장이 가져온 버블이 꺼지면서 1825년에는 최초의 전세계적인 금융 위기를 경험하게 됐던 것이다.


민중의 탄생

한편 1820년대 중반 무렵, 세계는 민주주의 시대로 이행하게 될 결정적인 단계를 맞이했다. 무슨 극적인 사건 때문은 아니었다. 소수만 독점하던 권력이 더 이상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지배 계층의 엘리트들이 깨닫게 되면서 비롯됐다. 곳곳에서 민중을 역사에 등장시키려는 시도가 이루어졌다. 미국의 앤드루 잭슨 장군과 아일랜드의 다니엘 오코넬이 대표적이었다.
이 두 사람은 모두 각각 미국과 아일랜드의 국민성과 삶의 자세, 기호 등을 눈에 띄게 과장된 방식으로 표현하면서 대중들을 조직화했다. 그 결과 잭슨은 미국 최초의 근대적인 보통선거에서 민주당을 승리로 이끌어내었고 많은 사람들의 환영을 받았다. 오코넬 역시 근대 최초로 대중 정치조직을 만들며 아일랜드의 민족지도자가 되었다. 바다 건너 프랑스에서도 7월 혁명이 일어나 부르봉 왕가를 무너뜨리고 민중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했다.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산업혁명과 프랑스혁명으로 촉발된 개인의 자각은, 나폴레옹전쟁에 뒤이은 왕정복고로 길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저자의 말대로 ‘1830년까지 민중은 분명히 자신의 길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그 밖의 변화들

그 밖에도 과학과 발명은 새로운 시대를 특징짓는 매우 중요한 변화였다. 이 시기에 고도의 과학 지식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었다. 스티븐슨처럼 정규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도 최첨단 지식을 스스로 배워 당대 최고의 과학자 데이비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다. 대학 학위나 증명서, 자격증 등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당시 영국의 영리한 젊은이들 앞에는 엄청난 기회가 주어졌다. 그리고 그로 인해 마치 현재 대학을 중퇴한 실리콘 밸리의 젊은 혁신가들이 활약하는 미국처럼 그 당시 영국에서는 늘 다이나믹한 변화의 물결이 강하게 일고 있었다.


우리가 겪은 시대의 시작,
우리가 겪을 시대에 대한 통찰

폴 존슨은 『폴 존슨, 근대의 탄생』에서 1815년부터 1830년까지 15년간 전면적으로 일어났던 근대 사회의 시작지점을 역동적으로 보여주고자 했다고 말한다. 그런 저자의 의도가 성공적으로 구현되어서일까, 이 책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다고 여기는 여러 근대의 모습들이 그 짧은 기간 동안 폭발적으로 용솟음치는 것을 목도하게 된다. 그리고 세련된 지금 현재와 그 시기를 겹쳐보게 된다.
1815년 12월 5일 최초의 근대식 축구 경기가 에트릭 숲의 카터로에서 열렸다. 셀커크 팀과 얘로 팀의 경기였다. 셀커크 선수의 표식은 전나무 가지, 얘로 선수의 표식은 히스 잔가지였다. 이걸 몸에 붙이고 90분간의 경기를 펼쳤다. 각팀 응원단이 기를 흔들어댔다. 이 대목을 읽으면 자연스레 현대의 영국 프리미어 리그가 머릿속에서 그려진다. 이 책에 소개된 숱한 변화의 결과들은 거의 대부분 이런 식으로 현재와 오버랩된다. 그리고 그렇게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기다보면 종국에 우리는 우리가 사는 시대가 싹트던 그 뜨겁고 역동적인 근대의 탄생 지점을 총체적으로 떠올릴 수 있게 된다. 이 책을 읽는 재미요 보람이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다. 묘하게도 이 책 『폴 존슨, 근대의 탄생』이 묘사하는 역동적인 15년의 모습은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시기가 또 다른 ‘근대의 탄생’이 아닐까 느껴지게 한다. 1990년대 초반 냉전시대의 종식은 오랜 나폴레옹전쟁의 끝을 떠올리게 한다. 그로 인한 안정을 바탕으로 발달된 역마차 통신과 외륜 증기선의 발명은 냉전 종식 이후 인터넷과 모바일 혁명을 떠올리게 한다.
유럽인들이 신대륙의 값싼 땅을 찾아 떠난 것처럼 지금의 젊은이들은 웹과 모바일에 펼쳐진 ‘가상공간’을 향해 떠난다. 근대의 탄생기에 사람들은 직접 몸을 던져 신세계로 떠났다면 우리 시대에는 PC와 스마트폰을 타고 디지털 세계로 뛰어든다. 근대의 탄생기에 ‘과학 기술’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었던 것처럼 현재의 IT, 디지털 기술은 어린 학생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그 기술을 바탕으로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나가는 이들에게 학력은 거추장스럽다. 스티브 잡스도, 주커버그도 새로운 시대를 만드는 모험을 위해 대학을 중도에 뛰쳐나왔다. 1815~1830년 무렵 출판과 서적상, 작가로 큰 돈을 모았던 것처럼 지금은 애플리케이션과 소셜 네트워크로 엄청난 부를 축적한다. 이렇게 근대의 탄생기는 바로 ‘지금 현재’와도 묘하게 오버랩된다.
근대가 탄생했던 15년간은 ‘모든 게 처음이었던 시대’였고 ‘역사상 결코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특별한 시대’였다. 폭군과 천재, 광인들이 뒤엉켜 근대를 시작했던 불같은 시기였기에 그 변화가 축복인지 재앙인지 조차 불분명한 시대였다. 변화가 준 기회들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들도 있었고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자들도 있었다. 작곡가 로시니는 이 새로운 세계의 탄생을 너무나도 싫어한 나머지 아예 작곡을 영원히 멈춰버렸다. 그 변화의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그래서 모두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그림 제목처럼 「안개바다 위의 방랑자」였다. 프리드리히는 그림과 함께 이렇게 말했다. “판단은 시간이 내려줄 것이리라. 과연 찬란한 나비가 탄생할 것인지 아니면 구더기가 나올 것인지.”
그로부터 200여 년이 지났다. 2014년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느끼기에도 세계는 불과 십수 년 만에 되돌릴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변했다. 다시 우리는 ‘모든 게 처음인 시대’를 맞고 있다. 또한 ‘역사상 결코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특별한 시대’를 맞고 있기도 하다. 지금으로부터 200년 후에 또 다른 누군가는 폴 존슨처럼 우리가 살아온 이 십수 년을 또 다른 ‘근대의 탄생’이라 명명할 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책은 지금 현재의 변화가 주는 기회를 포착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통찰’을 제공할 것이다. 정답이 없는 사회에서는 역사가 가장 유사한 해결책이니까. 반대로 변화의 속도에 현기증을 느끼는 이들에게는 ‘성찰’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남는다. 프리드리히가 물었던 질문에 우리는 답을 들었던 것일까. 시간은 과연 판단을 내려준 것일까. 우리가 사는 근대 세계는 ‘나비’인가 ‘구더기’인가. 그리고 200년 뒤에 우리가 맞이할 세계는 ‘나비’일까 ‘구더기’일까.


역사학의 거장, 인류의 거대사 속에서
분야와 분야를 넘나들며 통섭하다

영국이 자랑하는 저널리스트이자 역사학의 거장인 폴 존슨은 역사, 인문, 종교 분야에서 굵직한 책을 30여 권 저술했다. 『유대인의 역사』 『기독교의 역사』 『모던타임스』 같은 방대한 책들이다. 이처럼 다양한 저술 활동을 펼치던 폴 존슨에게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마치 정설처럼 근대의 시작은 1780년대라고 지식계에서는 논의되었는데, 그가 보기에는 나폴레옹전쟁이 시작된 1800년대 초까지도 중세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폴 존슨은 이때부터 근대의 시작점을 찾기 위한 거대한 작업에 착수했다. 논문과 정부 문서, 당시의 회의자료, 신문, 잡지 등의 전통적인 사료를 이 잡듯이 뒤졌다. 그러나 거기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 당시에 살았던 사람들의 편지와 일기, 사적인 문서, 의회에서 주고받은 말과 기록된 대화, 노래, 시와 소설, 그림 등 살필 수 있는 거의 모든 자료를 섭렵했다.
관점도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았다. 정치사적 관점에서 보는 근대의 시작점과 철학사적 관점에서 보는 근대의 시작점은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대신 그 수많은 과거의 사료들이 들려주는 ‘아득히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들’에 귀를 기울였다. 행복한 혹은 분노한, 날카로운, 열정적인, 냉소적인, 천박한, 겸손한, 거만한 목소리들. 그런 과정을 통해 폴 존슨은 우리의 현재가 만들어진 15년을 정확하게 짚어낼 수 있었다.
그렇기에 이 책은 한편의 ‘거대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문명학자 제레드 다이아몬드가 전통적 사료의 한계를 넘어 과거의 생태환경과 기후 지리적 환경을 세밀하게 파헤쳤을 때 ‘문명 출현 과정의 불균형’이라는 거대한 비밀이 드러났던 것처럼, 폴 존슨 역시 전통적 사료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분야와 분야를 넘나드는 통섭적 성찰을 통해 마침내 근대의 시작점을 오롯이 찾아냈기 때문이다. 그렇게 태어난 또 한 편의 거대사가 바로 이 책 『폴 존슨, 근대의 탄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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