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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글자책] 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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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상품명 [큰글자책] 개경
정가 ₩35,000
판매가 ₩3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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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눌와
ISBN 9791189074715
출간일 2024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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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고려왕조의 400년 수도 개경,
그 당당하고도 활기찬 모습을 되살려내다


개경의 기원과 주변의 자연환경부터, 궁궐과 성곽처럼 수도로서 필요했던 시설들은 물론 주거와 상업 등 그곳에 살던 사람들의 생활과 관련한 내용까지 충실히 담아 고려의 당당한 도읍이자 활기찬 도시였던 당대 개경의 풍경을 생생하게 전하는 책. 한국역사연구회와 남북역사학자협의회 등에서 활동하며 개경을 연구해 온 저자 박종진 교수가 수차례 개경을 직접 답사하며 찍은 사진들, 다양한 자료를 바탕으로 고려시기 개경 안팎의 주요 시설들의 위치를 표시한 지도가 다량 수록되어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목차

책을 내면서

1 개성의 자연

개성 주변의 산과 산줄기
개성 주변의 강과 물줄기
「고려세계」에 보이는 개성 주변의 자연

2 고려 건국과 개경 천도

고려 건국의 기반, 송악군
개경 천도의 배경과 의미

3 성곽

개성의 성곽들
나성: 고려의 도성
황성: 황제의 성을 의미하였나?
내성: 조선시기의 성
대흥산성: 고려 때부터 있었나?

4 궁궐

고려 궁궐 연구의 어려움
고려시기 궁궐의 운영과 변화
송악산 남쪽의 고려 본궐
개경의 대표 이궁, 수창궁과 연경궁

5 정치제도의 운영과 개경의 관청

정치제도 운영의 특징
주요 관청의 위치

6 태묘와 사직

태묘와 사직의 설치와 변화
태묘의 구성과 운영
사직단의 구조와 사직 제례

7 국자감과 성균관

고려 전기 국자감의 설치와 정비
고려 후기 국자감의 변화와 유교 교육의 진흥
고려 말 성균관의 중영과 구조

8 경제제도 운영과 개경

경제운영의 특징과 재정관서
조세제도의 운영과 개경
구휼제도의 운영과 개경

9 시장

시장의 설치와 관리
시장의 종류
시장의 위치와 형태

10 도시문제와 주거

주거

화재
치안

11 절

개경 절의 기능
개경 절의 창건과 위치
불교문화재

12 왕릉

고려왕릉의 위치와 구조
고려왕릉의 관리와 조사
고려왕릉의 현황

13 고려의 경기, 개성부의 설치와 변화

왕도 개경을 지원하는 특별구역, 경기(개성부)
919년(태조 2) 개주의 설치와 범위
995년(성종 14) 개성부의 설치와 적현·기현
1018년(현종 9) 경기의 성립과 특징
1062년(문종 16) 지개성부사의 설치
1308년(충선왕 복위) 개성부의 개편과 의미
경기(개성부) 설치의 명분과 현실

14 개경의 지리적 범위와 행정체제

개경의 지리적 범위(경기·4교·개경)
5부방리제의 시행과 운영
4교의 범위와 기능

15 강화 천도와 개경

강화 천도 논의와 천도 과정
강화 천도 시기의 개경
개경 환도 과정과 환도 후의 개경

16 고려 말 조선 초 개경의 위상

고려 말 천도의 추진과 의미
고려 말 경기의 확대
조선 건국과 개경 위상의 변화

17 개경의 특징과 위상

개경의 조영 과정과 그 특징
개경의 특징과 위상

개성 관련 주요 자료
참고문헌
연표로 읽는 개성의 역사

저자소개

박종진

출판사리뷰

고려왕조의 400년 수도 개경,
그 당당하고도 활기찬 모습을 되살려내다


서울에서 60km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 개성(개경)이 있다. 태조 왕건이 919년에 수도로 정한 뒤 400년이 넘도록 고려의 수도였던 곳이다. 조선이 건국된 뒤 한양(서울)에 수도의 자리는 내주었지만, 조선시기에도 줄곧 가장 중요한 지방도시 중 하나로서 특별한 지위를 누렸다. 개성은 이렇게 우리 역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던 도시임에도 휴전선 이북에 있다는 한계 탓에 그간 제대로 된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러다 1990년대부터 고려사 연구가 진전되고, 특히 2000년 이후 남북 교류가 활성화되면서 많은 연구성과가 쌓였으나 이를 알기 쉽게 정리한 책은 찾기 힘들었던 것이 현실이다.

『개경-고려왕조의 수도』는 한국역사연구회와 남북역사학자협의회 등에서 활동하며 개경을 연구해 온 박종진 교수가 고려시기 개경을 다방면에서 조명한 책이다. 개경의 기원과 주변의 자연환경부터, 궁궐과 성곽처럼 수도로서 필요했던 시설들은 물론 주거와 상업 등 그곳에 살던 사람들의 생활과 관련한 내용까지 충실히 담아 고려의 당당한 도읍이자 활기찬 도시였던 당대 개경의 풍경을 생생하게 전한다. 저자가 수차례 개경을 직접 답사하며 찍은 사진들, 다양한 자료를 바탕으로 고려시기 개경 안팎의 주요 시설들의 위치를 표시한 지도가 다량 수록되어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개경은 어떻게 고려의 수도가 되었는가

고려는 본래 철원에서 건국되었다. 하지만 바로 다음 해인 919년에 송악, 후일의 개경으로 천도한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태봉의 수도였던 철원에서 왕건이 역성혁명에 반발하는 수차례의 반란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반발을 억누르기 위해 왕건은 자기 가문의 본거지였던 개경을 새로운 수도로 택하였다. 또한 개경은 궁예가 철원으로 옮기기 전까지 3년간 수도로 삼았던 곳이니만큼 바로 활용할 수 있는 기반시설들이 이미 갖춰져 있기도 했다.

여기에 더해 개경은 고려 영토의 중심에 해당했고 예성강과 임진강, 한강과 가까워 수운에도 유리한 입지였다. 한양으로 천도한 조선 역시 고려 때의 조운로를 거의 그대로 이용했다는 데서 그 지리적 이점을 알 수 있다. 왕건은 고구려의 뒤를 이어받는다는 명분을 내세워 한때 서경(평양)으로 천도하려고도 했으나 현실적인 이유로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이렇게 고려의 수도가 된 개경은 몽골의 침입을 피해 강화도로 천도했던 30여 년을 제외하고는 쭉 그 위상을 지켰다.

송악산 남쪽의 고려 본궐, 그 전모를 살피다

궁궐은 왕조국가에서 임금의 권위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조선의 수도인 한양에 경복궁과 창덕궁과 같은 궁궐들이 있었듯, 고려의 수도인 개경에도 당연히 궁궐이 있었다. 송악산 남쪽 만월대가 바로 고려의 본궐이 있던 자리이다. 하지만 막상 고려의 본궐은 그 전모가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상태였다. 고려시기에도 수차례 변란을 겪으면서 파괴되고 재건하기를 반복했고,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한양으로 천도한 뒤에는 폐허가 되어 그 흔적 또한 땅에 묻히고 말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선시기 때부터 이미 현장답사와 문헌기록을 통해 고려 궁궐의 구조를 밝히려는 시도가 있었으며 북한에서도 만월대에 대한 발굴조사를 꾸준히 진행해 왔다. 특히 2007년부터는 개성 만월대 남북공동 발굴조사가 시작되어 2018년 12월까지 8차례에 걸쳐 만월대 서부건축군에 대한 발굴을 진행하였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최신 연구성과들을 반영하여 고려 궁궐의 전각 배치와 그 특징을 정리하였다.

나라의 정신적 지주, 태묘와 사직

『개경-고려왕조의 수도』는 『고려도경』과 『고려사』 등의 문헌기록을 바탕으로 개경의 태묘(종묘)와 사직 그리고 중요 관청들의 위치와 역할을 소개하고 있다. 태묘와 사직은 나라의 정신적인 기반이 되는 시설로 『주례』에 따르면 ‘좌조우사’, 즉 태묘는 궁성의 왼쪽에 사직은 오른쪽에 위치하는 것이 원칙이다. 고려의 태묘와 사직 또한 크게는 그 원칙에 따라 배치되었다. 하지만 궁성 바로 앞에 좌우대칭으로 태묘와 사직을 배치했던 중국과 달리 개경에서 태묘와 사직은 궁성에서 꽤 떨어진 곳에 배치되었다. 고려의 태묘는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나, 조선의 종묘가 고려 후기 태묘의 형태를 이어받았다고 전하여 그 모습을 떠올려볼 수는 있다.

왕도 개경을 감싼 삼중성벽

개경의 성곽은 궁성-황성-나성의 삼중구조로 이루어져 있었다. 궁성은 가장 안쪽에서 본궐과 그 인근을 보호하였고, 황성은 궁성 바깥을 감싸면서 한때 도성의 역할을 하였다. 마지막으로 개경을 둘러싼 송악산(북), 오공산(서), 용수산(남), 부흥산(동)의 능선을 따라 쌓은 나성은 둘레 23km에 이르고 25개의 문이 있는 장대한 규모로 개경을 지키는 도성이자 그 범위를 설정하는 경계였다.

저자에 따르면 개경은 일관된 계획과 방향을 가지고 형성된 도시는 아니었다. 919년에 도읍이 된 이래 110년이 지난 1029년에서야 나성이 축성되면서 완성된 모습을 갖출 정도로 오랜 시간에 걸쳐 이루어진 도시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왕도 개경은 여러 독특한 특징을 갖고 있었고, 이는 후일 한양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불교와 상업의 도시 개경

개경은 불교도시라고 할 만큼 절이 많은 도시였다. 기록에 따르면 개경에는 이름난 절만도 300개가 넘었고, 지금도 이름을 확인할 수 있는 절이 100개가 넘는다. 개경의 절들은 그저 종교시설에 머무르지 않았다. 개경의 풍수를 보완하기 위한 비보사찰로서 지어지기도 했고, 왕실의 제사를 지내는 곳이기도 했다. 또한 임금들은 절을 이궁으로 삼아 머무르기도 했으며 때로는 정치적인 용도로 활용하기도 했다. 개경 안팎 주요 도로 인근의 절들은 만남의 장소였고, 어려운 백성들을 돕는 구휼의 공간으로 쓰이기도 했다. 지금도 개성에는 당대에 만들어진 불교문화재가 여럿 남아 있어 당시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개경 곳곳에는 시장이 있었는데, 특히 개경의 중심도로라 할 수 있는 남대가의 시전행랑은 기둥이 1000개가 넘었다고 할 정도로 방대한 규모였다. 이외에도 마시(말), 돈시(돼지)와 같은 가축 시장, 종이 시장인 저시, 기름 시장인 유시 등도 있었다. 또한 개경 시내 곳곳에는 곡식, 채소, 땔감을 파는 시장이 열려 개경 사람들의 삶을 지탱했다. 이처럼 활발한 상업활동은 개경의 풍경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였다.

고려 망국 이후의 개경

조선은 개경에서 건국하였다. 이성계는 1392년 개경의 중심부에 있던 고려의 별궁인 수창궁에서 즉위하여 조선의 첫 임금이 되었다. 하지만 고려의 수도로서 개경의 위상은 고려 말부터 이미 흔들리고 있었다. 홍건적과 왜구의 침입으로 나라가 혼란에 빠지자 개경의 운이 다하였다는 지기쇠왕설이 대두하며 수도를 옮겨야 한다는 논의가 일어났고, 공양왕 때는 실제로 남경(한양)에 임금이 반년 남짓 머무르기도 하였다. 건국 후 2년 뒤인 1394년 조선은 수도를 한양으로 옮겼다.

1399년에는 조선의 제2대 임금인 정종이 수도를 다시 개성으로 옮기기도 하였으나 그 뒤를 이은 태종이 1404년 한양으로 환도하였고, 이후 개성은 다시는 수도의 자리를 되찾지 못했다. 이후 개성은 경기도의 중심이자 왕도 한양을 보좌하는 도시로서 조선시기 내내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였고,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친 지금은 분단의 현장이자 남북교류의 상징으로 우리에게 울림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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