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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3 : 1200~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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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상품명 중세 3 : 1200~1400
정가 ₩80,000
판매가 ₩7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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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시공사
ISBN 9788952774248
출간일 2016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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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움베르토 에코가 기획하고
수백 명의 학자들이 참여한
중세의 결정판


“중세는 암흑기가 아니다.
암흑기라는 표현에서 끝없는 공포, 광신주의와 이교에 대한 편협성, 역병,
빈곤과 대량 학살로 인한 문화적이고 물질적인 쇠퇴기를 떠올린다면
…… 이는 부분적으로만 적용할 수 있다.
그 시대가 남긴 유산 대부분을 우리는 아직도 사용한다…….
우리가 우리 시대의 것인 것처럼 아직도 사용하는 중세의 발명품은 끝이 없다.”
-움베르토 에코, 전체 서문에서

“오늘의 눈으로
다시 바라본 중세,
가장 빛났던 천 년”

『장미의 이름』의 배경이 되었던 13-14세기의 중세, 움베르토 에코 사후 출간되는 첫 책!
중세 백과사전 속에 담겨진 빼곡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의 향연

신을 떠나 인간에게로 향한 1200년 이후의 중세

움베르토 에코는 “중세는 암흑기가 아니다” 말하며 중세를 역병, 전쟁, 학살이 만연했던 어둠의 시대로 알고 있는 우리의 상식에 강렬한 질문을 던진다. 중세에도 황금기가 있었으며 어느 시대 못지않게 찬란했다. 특히 1200년 이후의 중세는 여러 분야에서 놀라운 발전을 경험했다. 여러 군주국이 형성되고 진정한 시민 계급이 탄생했으며 단테, 조토, 아퀴나스 같은 수많은 철학가와 문학가, 예술가가 활동했다. 안경, 단추, 아라비아 숫자 등 현대의 우리도 사용하는 도구와 관습이 이 시기에 시작되었다. ‘움베르토 에코의 중세 컬렉션’은 중세에 대한 우리의 오해와 편견들을 깨고 그 시대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는지, 우리 시대와는 무엇이 다른지를 역사, 철학, 과학과 기술, 문학과 연극, 시각예술, 음악 분야로 나누어 증명해 낸다. 그리고 근대를 거쳐 온 우리 시대가 당면한 여러 문제들을 풀어 나갈 지혜를 엿보게 해 준다.

목차

역사
-역사 서문(라우라 바를레타)
-사건들
-국가들
-경제
-사회

철학
-철학 서문(움베르토 에코)
-지식의 순환과 대학들
-철학과 신학
-지식과 전통의 비교

과학과 기술
-과학과 기술 서문(피에트로 코르시)
-수학
-물리학
-유럽의 연금술과 금속학
-신체, 건강, 치료에 대한 지식
-혁신, 발견, 발명
-유럽 밖으로

문학과 연극
-문학과 연극 서문(에치오 라이몬디, 주세페 레다)
-인문주의를 향한 중세의 여정
-라틴어와 속어의 종교 문학
-시의 승리
-서술의 취향
-산문의 형태들
-연극

시각예술
-시각예술 서문(안나 오타니 카비나)
-유럽의 성당들
-이탈리아 조각
-“라틴어로 그리스를 그리다”
-다양한 주제와 주인공들
-중세에 대한 향수

음악
-음악 서문(루카 마르코니, 체칠리아 판티)
-중세 후기의 음악과 사회
-음악적 관습

찾아보기 / 부록 I: 도판과 지도 / 부록 II: 연표

저자소개

움베르토 에코 , 김정하 , 차용구, 박승찬

출판사리뷰

[움베르토 에코의 중세 컬렉션 소개]

중세 Ⅰ(476~1000): 야만인, 그리스도교도, 이슬람교도의 시대
중세 Ⅱ(1000~1200): 성당, 기사, 도시의 시대
중세 Ⅲ(1200~1400): 성, 상인, 시인의 시대
중세 Ⅳ(1400~1500): 탐험, 무역, 유토피아의 시대(2018년 출간 예정)

‘움베르토 에코의 중세 컬렉션’은 세계적인 석학 움베르토 에코가 기획하고 수백 명의 학자들이 참여해 중세의 모든 것을 다룬 인문 시리즈로, 시기에 따라 총 4권으로 구성된다. 역사와 철학에서 과학과 기술, 문학과 연극, 시각예술, 음악까지 현재 우리 생활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중세의 다양한 사건, 사상, 제도, 문화, 예술 등이 촘촘하게 소개된다. 흔히 암흑기라고 알려진 이 시기가 사실은 얼마나 풍요로운 결실을 맺어 왔는지, 또 근현대의 여러 분야가 정착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 기틀을 마련해 왔는지를 알려 준다. 기획자와 집필자들의 국제적인 명성, 방대하고도 세밀한 자료 등에서 다른 책들과는 절대 비교할 수 없는 중세의 결정판.

중세 역사, 유럽 세계의 주인공이 되기 위한 치열한 경쟁

13세기는 제4차 십자군의 콘스탄티노플 정복과 함께 열렸다. 그러나 십자군은 ‘신의 의지’를 제창했던 성전聖戰이 얼마나 변질될 수 있는가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었는데, 그럼에도 1291년까지 활동이 이어졌다. 이것은 프랑스의 필리프 4세 미남왕이나 신성로마 제국의 프리드리히 2세와 같은 교황의 권위에 도전장을 내민 군주들이 등장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세력 팽창이라는 서로 다른 주체들의 같은 목적 때문에 13-14세기 내내 영토 전쟁이 벌어졌는데 유럽 세계의 군주들 외에도 몽골 제국의 칭기즈 칸이나 오스만 제국의 무라드 1세 또한 이 시대의 주인공이었다.
그리스도교 권력은 13-14세기에도 정치, 경제, 사회의 전 영역 깊숙이 영향력을 행사했으나 조금씩 한계와 문제를 드러냈다. 세속의 정치에 관여하여 자신의 지위를 확립하려 했던 교황들의 행동은 반목과 충돌에 휩싸였고, 결과는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새로운 탁발 수도회의 성립, 카타리파나 발도파와 같은 이단의 활동, 교황청의 아비뇽 이전과 같은 굵직한 사건들에서, 심지어는 흑사병 같은 질병에서 우리는 새로운 세계를 향한 움직임을 포착할 수 있다.
프랑스와 잉글랜드 사이에서 벌어졌으며 너무나 오랜 기간 때문에 이름조차 ‘백년전쟁’으로 불린 전쟁은 처음에는 봉건 전쟁으로 시작되었으나 확고한 정치적-사회적 기틀을 갖춘 두 국민 군주국을 탄생시키며 종식되었다. 여기에는 왕위 계승 방법, 용병, 기병과 보병, 신무기, 평화 조약, 국민 군주국 등과 같은 당대를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 있는 단서들이 있다. 두 나라를 필두로 여러 국가가 차례로 군주국의 모습을 갖추어 가며 법을 강화하고 군주의 권위를 높였다. 이탈리아만이 예외로 상업을 통하여 부富를 축적한 자치 도시들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마르코 폴로를 대표 사례로 꼽을 수 있는 동방 혹은 넓은 바다로의 활발한 진출도 지나치면 안 된다.
중세에 관한 오해 중 하나가 중세는 여성을 혐오했다는 것이다. 스콜라 철학으로 ‘여성은 남성에 비해 허약하고 미성숙한 존재’라는 개념이 정립되었으니 어느 정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여성의 상속이 관습법 차원에서 인정받았음은 물론 13세기부터 여성들은 통치자부터 수녀원장, 예언가와 이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다. 여성의 섭정 관습도 이 기간에 확립되었다. 덴마크의 여왕 마르그레테는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을 통합하여 칼마르 동맹을 만들었다. 또한 시에나의 가타리나와 스웨덴의 비르지타 등은 교회 개혁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일상은 계속되었다. 주거와 관련해서는 도시 자체가 잘 방비된 하나의 거대 주택인 셈이었는데 사람들은 치안을 위해 성채 안 혹은 성문 입구를 따라 주거지를 마련했다. 영주들의 집은 크고 높았으나 가난한 이들의 집은 작고 초라했다. 온 가족이 이불 한 채를 같이 덮고 간소한 집기만 겨우 소유했다. 파스타의 확산으로 식생활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있었다. 곡물 소비가 빠르게 증가했는데 이것이 질병 확산에 원인이 되기도 했다. 13세기부터 노동자와 부유층의 옷차림에 보다 큰 차이가 나타났으며 신분에 맞지 않은 옷을 입는 것은 일종의 괘씸죄에 해당했다.

중세 철학과 사상, 아리스토텔레스 재발견의 영향

13세기는 토마스 아퀴나스가 활동했던 기간으로, 신학 중심의 철학을 주창했던 스콜라 철학의 황금기에 해당했다. 스콜라 철학은 주어진 문제를 중심으로 다양한 주장과 반론을 계획하고 분석하고 토론을 벌였다. 그리고 이들을 비교한 후에 최종 결론에 도달하는 ‘문답’을 통해 발전해 나갔다. 따라서 13-14세기 내내 사변적이거나 도덕적인 것부터 아주 사소한 것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묻고 반박하는 토론들이 이어졌다. 특히 고대 철학의 전통적 권위에 의존함으로써 이 기간에 아리스토텔레스 권위가 확립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여러 저술이 다시금 라틴 세계에 등장한 것은 번역과 주석 작업 외에도 사회, 문화, 과학 전 영역에 영향을 주었다.
그럼에도 아리스토텔레스주의와 토미즘이 절대적이었다는 데에는 어느 정도 반론의 여지가 있다. 프란체스코회의 철학자들은 토미즘을 신랄하게 비판했고, 영국에서는 경험주의 사상을 통하여 자연 철학의 여러 문제에 다가서고자 했다. 당시 사람들에게는 큰 파급을 주지 못했으나 라이문두스 룰루스와 그가 제창한 ‘조합술’은 17세기 과학 혁명기의 과학자이자 철학자인 라이프니츠에게 강력한 영감을 준 것은 물론 현대의 컴퓨터 논리에도 일정 부분 기여했다.
공식적으로 가톨릭 철학이 등장했던 시기에 이단 논쟁이 뜨거웠다는 것도 흥미롭다. 많은 저술에서 그리스도교인은 철학서처럼 유해한 책을 읽어서는 안 되며, 성서와 교부들의 해석, 기도서로 충분하다고 했다. 그 밖의 다른 모든 것들은 위험하고 또 인간의 능력에 적절하지 않은 ‘헛된 호기심’이라고 했다. 따라서 철학자들은 이교도의 저술을 연구하면서도 이것이 정당한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우리들은 당대에는 외면을 받았던 여러 사상가의 글에서 가치를 발견한다. 이단으로 의심을 받았기 때문에 배제된 주요 논쟁들이 다시 읽히기 시작하며 유대와 아랍 철학이 재발견되었고 전통적인 사상이 폭넓게 재구성되었다.
이 시대의 철학자로 알베르투스 마그누스, 토마스 아퀴나스, 보나벤투라, 둔스 스코투스, 오컴의 윌리엄, 에크하르트, 라이문두스 룰루스, 보에티우스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들은 각자의 사상을 정립하는 것만이 아니라 영혼, 인식, 정념, 유비, 형이상학, 무한 등 여러 가지 주제를 증명해 냈으며, 철학의 주류에서는 벗어나 있지만 단테와 같은 이들이 인문주의로의 여정을 시작했다.

중세 과학과 기술, 자연 현상에 대한 탐구와 도전

대학 제도의 안정과 발전을 근간으로 하여 13-14세기에는 철학과 신학의 분리와 함께 자연 현상에 대한 탐구 활동이 두드러졌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동화되어 가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도 아랍의 문명을 배우려는 노력과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수많은 논쟁도 발견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로버트 그로스테스트나 로저 베이컨과 같은 근대 과학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인물들이 등장했다. 당시의 과학은 자연학을 근간으로 한 자연 철학 혹은 자연 과학으로, 세계의 창조와 구성에 대한 질문을 중심으로 신의 역할과 자연 현상의 의미를 깊이 파고들었다.
의학과 관련해서는 의사와 천문학자, 자연 과학자, 연금술사의 경계가 구분되기 시작했다. 최초의 해부가 실시되면서 의학은 독립적인 학문으로 인정받았는데 여러 대학에 의학부가 건립되었다. 1348년의 흑사병도 빼놓을 수 없다. 그것의 파급력에 대해서는 〈월드워 Z〉나 〈레지던트 이블〉, 〈연가시〉와 같은 현대 영화에서 흑사병의 갈증과 환각 증세, 붉은 반점의 출현, 장기가 녹는 고통과 같은 증세를 고스란히 차용하고 있다는 것으로도 설명이 가능하다. 유럽 인구의 1/3이 사망한 이 사건에 중세인들이 마냥 방관했던 것은 아니다. 처방에 확신은 없었으나 마을마다 주치의를 임명하고 병의 종류를 구분했으며 절개술과 소작법 등의 초기 치료를 실시했다.
기술 영역에서도 여러 가지 의미 있는 혁신이 있었다. 14세기에 크랭크의 사용이 유럽 전 지역으로 확산되면서 직조 산업이 눈부신 성장을 경험했다. 이것이 무역과 상업의 발전을 가져오면서 부르주아 계층의 정치 분야 진출과 문화 분야 지원까지 이어졌다. 기중기의 사용은 고딕 성당 건축에 유용하게 이용되었고, 나침반과 화약 무기는 전쟁과 항해에 사용되었다. 여러 가지 기계 시계가 등장하며 사람들은 시간을 수학적 측정이 가능한 대상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유럽에 아랍 숫자를 소개한 피보나치와 안경의 발명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이었다.

중세 문학과 예술, 당대의 현실을 담다

중세 후기로 분류되는 13-14세기에는 기존의 문화 중심지였던 수도원과 궁정의 역할이 줄어든 반면 새로운 주역들이 등장했다. 하나의 국가였던 자치 도시가 새로운 대중을 만들었고, 부富를 갖춘 부르주아 계층이 새로운 대중으로서 문화 전 영역에서 발전을 견인했다. 세속 문화의 눈부신 발전에도 종교적인 삶은 여전히 삶과 문화의 중심에 자리했으나 라틴어를 읽지 못하거나 문맹의 대중을 위하여 속어로도 글이 쓰이기 시작했다. 조각과 도상 등도 여럿 제작되면서 문화의 질이 높아졌다. 음악이 학문의 영역에서 분리되어 예술로 자리매김한 것도 그것의 증거다.
14세기에 이탈리아는 문학의 황금시대를 맞이했다. 단테, 페트라르카, 보카치오의 역할과 의의는 그들이 르네상스의 문을 열었다는 것 이상으로 우리 시대의 문학에서도 유효한 수사와 비유의 원형이라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 중세의 현실 인식과 관련하여 실존하는 것, 환상적인 것, 현실 비판과 담론까지의 모든 것이 이야기로 전해지기 시작했다. 서사시, 우화시, 백과사전 외에도 단편소설과 서정시가 성립되면서 주제와 형식에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다.
단테는 『신곡』을 통해 인간이 겪는 모든 고민을 기록했다. 문맹의 대중을 위해 운율 구조로 쓰인 이 저술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무한의 변주가 가능하여 현재까지 1만 권의 해설서가 출간되었다. 그는 개인과 집단, 현세와 내세, 과거와 현재를 자유로이 넘나들며 중세의 지식과 사고를 총망라했다. 반면 페트라르카는 근대적인 의미의 ‘문학가’로 칭할 수 있는 최초의 작가로 『칸초니에레』에서 연인 라우라에 대한 개인의 애정을 유려하게 담아냈다. 또한 보카치오는 『데카메론』을 통해 이야기 문학이 성립되었음을 알렸다. 이 저술은 1348년의 흑사병에 대한 상세한 기록이자 문학이다. 그들은 한 시대를 글에 담아내려 한 탐험가이자 철학가였다.
고딕으로 대표되는 예술 영역에서는 프랑스가 발전을 주도했으나 비잔티움의 영향력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세속 권력들은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려는 의도로 교회와 함께 작품 제작의 주체가 되었다. 덕분에 예술가들은 유럽 여기저기를 이동하며 자신의 기술과 재능을 마음껏 뽐낼 수 있었다. 사람들이 조각과 회화가 기술이 아닌 ‘재능’의 결과라는 인식을 가짐으로써 작가의 이름이 작품에 남겨졌다. 또한 이 시기에 예술은 자연, 삶, 현실과의 밀접한 관계를 바탕으로 신화와 현실을 구분하기 시작했다. 공간, 자연, 감성에 대한 혁신으로 명암이 도입되면서 표정과 감정이 드러나기 시작한 데에는 조토의 공로가 크다. 중세 예술에 대한 향수는 18세기 중반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데 뉴욕의 세인트 패트릭 대성당이나 벤저민 웨스트 같은 화가들의 작업을 거쳐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 그리고 헤비메탈이나 문신가의 이야기에도 녹아 있다.
음악 분야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것은 음악이 학문 영역에서 감정의 동요를 일으키는 예술로 자리를 옮겼다는 것이다. 그 결과 여러 작곡가들이 활발하게 활동했고, 음길이와 박자 등을 기록하는 여러 가지 기보법이 발전을 거듭할 수 있었다. 전통적으로 구전이나 기억에 의존하던 연주는 기록이라는 강력한 수단을 만나면서 악보라는 고정된 형태로 남겨지기 시작했다. 독특한 것은 중세에는 기록의 관습을 언제 어디서건 같은 곡을 연주할 수 있다는 것보다는 연주의 질을 최고 수준으로 보존하는 데에 의의를 두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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