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1760년(영조 36년) 1월부터 1910년(융희 4년) 8월까지 조선 후기 151년간의 국정에 관한 제반 사항들이 기록되어 있는 일기체의 연대기이다. 『일성록』의 모태가 된 것은 정조는 세손 시절부터 직접 자신의 언행과 학문을 기록한 일기인 『존현각일기』였다. 정조는 『논어』에서 증자가 말한 “나는 날마다 세 가지 기준을 가지고 스스로에 대해 반성한다.” 에 깊은 감명을 받아 일찍부터 자신을 반성하는 자료로 삼기 위해 일기를 작성하였다.
1776년 즉위 후에도 직접 일기를 작성하던 정조는 직접 처결할 국정 업무가 점차 늘어나 일기 작성이 어려워지자 1783년(정조 7년)부터 규장각 관원들이 시정施政에 관한 내용을 중심으로 일기를 작성하고, 작성된 일기를 5일마다 왕에게 올려 재가를 받도록 하였다. 이로써 『일성록』은 국왕의 개인 일기에서 공식적인 국정 일기로 전환되었다.
『일성록』이 현재와 같은 체재를 갖춘 것은 1785년(정조 9년)경이다. 정조는 규장각에 명하여 자신이 탄생한 후부터 『존현각일기』에 이르기까지 기간의 일기 및 자신이 즉위한 이후에 기록된 『승정원일기』등을 기본 자료로 하여 일목요연한 체재를 갖춘 일기를 편찬하도록 명하였고, 책의 제목은 ‘일성록’으로 하였다. 그 결과 1760년(영조 36년) 1월부터의 일기가 일정한 체제에 맞추어 정리되었다.
목차
· 등장하는 주요 인물 ……………… 15
· 1777년 01월 ……………… 55
· 1777년 02월 ……………… 133
· 1777년 03월 ……………… 185
· 1777년 04월 ……………… 231
· 1777년 05월 ……………… 265
· 1777년 06월 ……………… 323
· 1777년 07월 ……………… 375
· 1777년 08월 - 8월 23일까지 ……………… 523
저자소개
정조 , 손귀분, 김흥중, 박주순, 배용구
출판사리뷰
『일성록日省錄』의 서(序)
일을 날마다 기록하고 날이 쌓여 해가 된 것이 역사이다. 역사에는 좌사左史가 기록하는 말과 우사右史가 기록하는 행동이 있는데 모훈謨訓 · 명령命令 · 문장文章은 모두 말이고, 기거起居 · 조회朝會 · 순수巡狩는 모두 행동이다. 예악禮樂과 형정政刑은 말 중에 드러난 것이고 행동 중에 큰 것으로서 통틀어 일이라고 하는데, 나라의 치란이 여기에 달려 있고 귀감으로 삼고 경계할 것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역사는 엄하고 비밀스러워 옛날의 역사는 볼 수 있으나 지금의 역사는 볼 수가 없다. 그런데 옛날을 보는 것은 지금을 살피는 것만 못하고, 남에게서 구하는 것은 자신에게 반추하는 것만 못하다. 이것이 『일성록』이 지어진 까닭이다.
우리 성상께서는 덕성을 기르던 어린 나이 때부터 동궁이 되고 보위에 오를 때까지 행동과 말을 기록하지 않은 날이 없었는데 이것을 연월별로 편집하여 조석으로 보고 반성할 자료로 삼으셨다. 기록으로 자세히 남아 있는 것과 기록 없이 혼자만 아시는 것을 처음에는 모두 성상께서 손수 적으셨고, 이후에는 내각內閣의 신하들에게 맡겼으나 필삭筆削은 또한 성상께서 직접 살피고 재결하시었다. 임신년(1752년, 영조 28년)부터 시작하여 을사년(1785년, 정조 9년)에 이르기까지 총 100여 권인데, 신 이복원李福源이 내각의 일에 참여하였다고 하여 서문을 지으라고 명하셨다. 신은 삼가 절하고 상고하여 말하는 바이다.
아, 성대하도다! 날마다 세 가지로 내 몸을 살핀다고 한 이는 증자曾子이고, 날마다 몰랐던 것을 알아가며 달마다 능한 것을 잊지 않는다고 한 이는 자하子夏이다. 두 선생의 말이 성상께서 일록日錄을 적으면서 취하신 뜻이고 각신閣臣에게 내리신 가르침이다. 그러나 증자가 날마다 살핀 것은 충忠 · 신信 · 전습傳習에 벗어나지 않았고, 자하가 날마다 안 것은 몰랐던 것과 능한 것을 넘지 않았으니, 이는 모두 학자의 일이지 성인이 힘써 할 바는 아니다.
우리 성상께서는 상지上知의 자질로 크게 번영할 운수를 맞이하여, 의리가 정밀하고 인애가 농숙하며 교화가 행해지고 제도가 정비되어, 성명聲明이 사방으로 통달하고 은택이 아래 백성에게까지 스며들었다. 이에 말과 행동이 법도에 맞아 만물을 교화하여 넉넉히 힘쓰지 않고 생각지 않고서도 자연히 도에 맞는 성인의 경지에 들어갈 것인데, 학자의 성찰 공부에 부지런히 종사하며 날마다 기록하여 방대한 책을 이루었으니, 겸손한 덕과 부지런한 공로가 얼마나 성대한가. 한가한 즈음에 펼쳐 찬찬히 살펴보면 역력히 시정時政이 눈앞에 나열될 것인데 이때 돌이켜 회고하여 심원하게 생각하다 보면 성학聖學이 밝고 넓은 경지에 이르고 치도治道가 높고 환한 경지에 도달하지 않겠는가.
이로써 두루 지난 일들을 상고해 보면, 우虞 · 하夏와 당唐 · 송宋나라에 비교하여 어떠하며, 오늘을 기준으로 처음 보위에 오를 때를 살피면 규모와 기상이 어떠한가· 조종조祖宗朝의 법도에 대해 구전舊典을 닦아 밝힌 것이 몇 가지이며, 중외中外의 이해와 관련하여 제안한 글을 채용한 것이 몇 가지인가· 윤음綸音을 반포하였는데 견감하고 진휼하는 실질적 혜택이 두루 미쳤으며, 교령敎令을 내걸었는데 죄인을 신중히 처리하는 지극한 뜻을 모두 준수하였는가· 재용을 절약하고 인민을 사랑하라는 것은 성인의 가르침인데 공사公私가 모두 고갈되었으니 절약한 것이 요령을 얻지 못한 것인가· 유사에게 맡기고 자신을 편하게 거처하는 것은 임금의 원칙인데 밤낮으로 항상 수고로우니 맡은 자가 현명하지 못한 것인가· 정치 강목은 자세하고 찬란하게 갖추어졌으며, 질박한 실질과 세련된 형식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는 폐단은 없는가· 언로를 크게 열었는데 귀에 거슬리는 말이 들리지 않으니 혹 마음을 비워 받아들이고 성의를 다해 대하는 데 부족함이 있으며, 주벌과 징토를 여러 차례 하였는데 국기國紀를 범하는 자가 그치지 않으니 혹 뿌리를 뽑고 근원을 막지 못한 것인가· 옛날 크게 훌륭한 일을 하려는 뜻이 혹 후퇴하고 꺾이어 계속하지 못함이 없으며, 조정의 백관들이 혹 생각을 가슴에 품은 채 진달하지 않음이 있는가· 선비의 기풍이 흥한가, 쇠한가· 융비戎備가 완비되었는가, 폐해져 있는가· 한 명의 인물에 대해서도 등용하고 버리는 데에 타당하였는가, 타당하지 못했는가· 한 가지 일에 대해서도 조처를 잘 하였는가, 못하였는가· 이러한 문제들을 반복하여 따지고 충분히 살펴 연역하되, 마치 전대의 역사를 읽는 것처럼 하여 본받을 만한 것은 본받고 경계할 만한 것은 경계하고, 어제의 일을 오늘 기록하고 오늘의 기록을 내일 살피면서 이 책을 이어서 또 써 가면 엮은 책이 세월에 따라 증가하여 몇 천 몇 만 권이 될지 모를 것이다. 그리하여 타당함만 있고 타당하지 못함은 없으며 잘함만 있고 잘못함은 없게 되어, 경계할 만한 것은 점차 줄어 경계할 만한 것이 없는 데 이르고 본받을 만한 것이 더욱 많아져 모두 본받을 만한 것이 되어, 한 부部의 일력日曆이 모범을 보이신 것과 서로 표리表裏가 된다면, 그 뜻의 친절함이 진실로 이전의 말과 지나간 행위에 비교할 것이 아니며, 그 쓰임의 광대함이 또한 어찌 증자와 자하가 이른 바 날로 살피고 날로 알아간다는 것과 견줄 수 있겠는가.
또 신이 삼가 성조聖祖의 『어제자성편御製自省編』을 보건대, 90년 세월 동안 몸소 행하고 마음으로 터득하여, 내면에 온축蘊蓄되어 큰 덕을 베풀고 발하여 대업을 이루어 큰 복을 누리고 후손에게 넉넉함을 드리우신 것은 실로 ‘성省’ 한 글자에 근본한 것이다. 지금 이 일록의 명의名義는 전해 받은 것이 있는바, 자상하게 마음을 전한 훈계와 사물을 대하면서 내린 가르침으로서 조용히 안부를 묻고 시탕侍湯하면서 들었던 것들을 모두 공경히 기억하고 자세히 기록하여 아름다운 계책과 훌륭한 법칙이 편들 사이에 넘쳐 난다. 그래서 한 번 열람할 때마다 마치 대면하여 명을 받드는 것과 같아 더욱 삼가 우리 성조께서 사랑하고 기탁하신 뜻을 보게 되니, 우리 성상께서 가슴에 새겨 본받은 정성은 전대前代의 제왕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것으로 영구히 우리 왕실의 가법家法이 될 것이다. 더구나 지금은 세자가 점점 성장하여 조기에 몸소 가르침을 보여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니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 성조께서 후손을 복되게 한 계책으로 우리 세자를 인도하고 성조께서 닦으신 무궁한 복을 우리 세자에게 끼치어 세자가 왕위를 훌륭히 계승하여 숙야夙夜로 천명天命을 받는 기틀을 다짐으로써 억만년 무궁한 태평의 아름다움을 맞이하는 것이 이 책에서 시작되기를, 신은 감히 글을 통하여 축원을 드리노라.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錄大夫 행 판중추부사行判中樞府事신 이복원은 삼가 절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근찬謹撰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