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사기』는 중국 한나라 때의 역사가인 사마천이 기전체(紀傳體)로 쓴 최초의 역사서이다. 그 이전까지의 역사서는 편년체(編年體)로 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사마천은 기전체란 역사 서술의 평면성을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방식으로, 제왕의 즉위 연대에 따라 사건을 기록한 「본기本紀」와 한 시대의 주인공으로 활동한 인물을 다룬 「열전列傳」, 그 밖에 시대의 다양한 움직임을 분야별로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한 「표表」, 「서書」, 「지志」 등으로 구성하였다.
이 책은『사기열전』중에서 오늘날의 우리와는 다소 동떨어진 부분들을 제외하고, 현대인들이 읽어둘 만한 부분만을 가려 뽑아 번역한 것이다. 따라서 이 책만으로도 『사기 열전』 전체를 이해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매 편의 처음에는 해당 시기를 표기해 두어 독자로 하여금 시대적 맥락을 놓치지 않도록 하고, 중국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차지하는 주나라, 춘추전국시대, 진나라, 한나라에 대해서는 별면에서 따로 상세히 다룸으로써 독자들이 역사적 흐름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당대 시대상을 알 수 있는 각종 유물 자료와 지도 등을 풍부하게 수록하여 자칫 낡아 보이는 고전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였다.
목차
들어가면서
백이 열전
[별면] 공자가 그리워한 나라, 주나라
관중·안자 열전
노자·장자·신자·한비 열전
손자·오기 열전
오자서 열전
[별면] 힘으로 인仁을 가장하다, 춘추시대
상군 열전
소진 열전
[별면] 칼로 천하를 다투다, 전국시대
장의 열전
백기·왕전 열전
맹상군 열전
평원군·우경 열전
위공자 열전
춘신군 열전
범수·채택 열전
악의 열전
전단 열전
염파·인상여 열전
여불위 열전
자객 열전
이사 열전
경포 열전
회음후 열전
[별면] 유방, 한 제국을 건설하다
역생·육가 열전
혹리 열전
유협 열전
영행 열전
골계 열전
일자 열전
화식 열전
태사공 자서
사마천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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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사마천
출판사리뷰
* 하늘의 도는 과연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
저 서산에 올라 고사리를 꺾네.
무왕은 폭력으로 폭력을 바꾸었건만 그 잘못을 모르는구나!
신농, 우나라, 하나라 시대는 홀연히 사라졌으니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
아! 나는 떠나련다, 운명이 쇠했으니.
이것은 『사기열전』의 첫머리를 장식한 「백이 열전」의 한 대목이다. 백이와 숙제는 상나라 제후국의 왕자들로, 주나라 무왕이 상나라의 마지막 왕인 주왕을 응징하려 하자 불충이라는 명분으로 반대했다. 주 무왕이 그러한 반대를 무릅쓰고 상나라를 치자 백이와 숙제는 명분이 통하지 않는 혼탁한 세상과는 결코 타협할 수 없다며 수양산으로 들어가 고사리로 연명하며 살았다. 위의 노래는 그들이 굶어 죽을 지경에 이르렀을 때 지은 것으로, 결기 어린 도저한 정신세계를 상징한다.
사마천은 이 두 인물에 의탁하여 『사기』 전체의 의도를 말하려 했다. 그는 어진 덕망을 쌓고도 끝내 굶어 죽은 백이와 숙제의 운명을 슬퍼하며, 정의로운 자가 망하고 불의한 자가 흥하는 현실 세계의 냉혹성과 그 속에서 겪는 인간 운명의 비극성을 성찰했다. 이는 다시 하늘의 도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졌으니, “천도시야비야天道是耶非耶, 즉 하늘의 도는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라는 말은 그것을 잘 나타내는 핵심 대목이다. 여기에는 사마천 자신의 참혹한 경험이 투영되어 있다.
* 고통을 누르고 발분하여 『사기』를 짓다
사마천의 삶을 말할 때면 한 무제(기원전 140~87년)를 빼놓을 수 없다. 한 무제는 원대한 포부와 야심을 지녔던 인물로, 한 제국의 전성기와 쇠퇴기를 동시에 이끌었다. 그는 유교 이념을 바탕으로 중앙집권체제를 강화했고, 무엇보다도 북방의 흉노족 정벌을 최대 숙원 사업으로 추진했다. 그때 흉노 정벌에 나섰던 젊은 장수 이릉이 분전 끝에 적에게 포위되어 마침내 투항하고 만 사건이 일어났다. 이는 자존심이 강했던 한 무제로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당시 조정 대신들도 앞 다투어 이릉을 비난했다.
이러한 때 사마천은 ‘한 무제의 분기를 풀어 주기 위해’ 이릉을 변호하고 나섰다. 이릉은 5천의 병력으로 8만의 적과 맞서 끝까지 분전했고,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고 흉노에게 투항한 것은 다시 살아 돌아와 훗날을 도모하기 위한 뜻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때가 너무 좋지 않았다. 사마천은 한 무제의 노여움만 더욱 사 결국 사형에 처해졌다. 사형에서 면하려면 50만 전을 내거나 생식기를 자르는 궁형을 감내해야 했다. 숨 막히는 고통과 굴욕이 그에게 밀려왔다. 사마천은 궁형을 선택함으로써 목숨을 부지했다. 그는 스스로 삶을 버리는 대신 살아남아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것이 더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차가운 감옥 안에서 사마천은 그 자신의 고통을 넘어 인류 보편의 비극과 마주했다. 특히 의로운 일을 행하고도 끝내 덧없이 사라져 간 인간의 기구한 운명을 슬퍼했다. 그러나 인간은 누구나 곤경에 처하기 마련이다.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대하느냐일 것이다. 사마천은 곤경 가운데서도 분발하여 후세에 이름을 남겼던 선현들을 떠올렸다.
옛날 주나라 문왕은 옥에 갇혔지만 그곳에서 『주역』을 풀이했고, 천하를 주유했던 공자는 진나라와 채나라에서 고난을 겪었던 까닭에 『춘추』를 지었으며, 굴원은 군왕에게 쫓겨나는 슬픔을 누르고 『이소』를 지었고, 좌구명은 눈이 먼 뒤 『국어』를 남겼으며, 손빈은 다리가 잘리는 고통을 겪고도 병법을 논했다. 또한 『시경』 삼백 편은 대체로 현인들이 발분하여 지은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모두 마음속에 울분이 맺혔는데, 그것을 풀 수 없었기에 글을 통해 자신의 뜻을 전했던 것이다.
사마천은 고통을 누르고 분발하여 그 옛날 공자가 제시했던 왕도정치의 이상을 기준으로 역사의 무대 위에 나타났다 사라져 간 인간 군상들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그가 고통 가운데서 길어 올린 『사기』 전체에는 약자에 대한 동정과 폭력에 대한 반대, 정의와 양심을 추구하는 정신이 면면히 흐르고 있다. 이로 보건대 “천도시야비야”라는 말은 결국 천도에 대한 회의라기보다는 각박하고 냉혹한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과 분노의 다른 표현이었던 것이다.
* 고전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으로 호평을 받은 ‘서해클래식’의 여섯 번째 작품
이 책은, 『사기열전』에서도 현대인들이 읽어둘 만한 부분만을 가려 뽑아 번역한 것이다. 이 책에서 제외한 내용은 대부분 한나라 건국 후에 활동한 여러 관리와 유학자, 그리고 한나라를 둘러싸고 있던 이민족과 관련한 것으로, 오늘날의 우리와는 다소 동떨어진 것이 많다. 따라서 이 책만으로도 『사기 열전』 전체를 이해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한편 당대 시대상을 알 수 있는 각종 유물 자료와 지도 등을 풍부하게 수록하여 자칫 낡아 보이는 고전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매 편의 처음에는 해당 시기를 표기해 두어 독자로 하여금 시대적 맥락을 놓치지 않도록 했다. 그 밖에 중국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차지하는 주나라, 춘추전국시대, 진나라, 한나라에 대해서는 별면에서 따로 상세히 다룸으로써 역사적 흐름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