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라캉과 지젝을 만나러 가는 지름길
오이디푸스의 자해부터 코카콜라의 몰락까지, 단숨에 읽는 라캉과 지젝 해설서로 욕망과 주이상스, ‘큰 타자’와 ‘오브제 프티 아(대상 a)’, 상상계·상징계·실재계…. 포스트구조주의 정신분석학자 라캉의 핵심 이론, 그리고 그에 의거한 슬라보예 지젝의 문화비평적 글쓰기를, 문학·예술 명작들과 손 가까운 현대 소비사회의 일상과 연결시켜 해설한 책이다.
목차
1장
에드거 앨런 포 · 7
『도둑맞은 편지』 · 8
거울 이미지 / 세 개의 시선 / 기표가 된 편지
‘letter’의 다양한 의미 · 20
기표란 무엇일까? 은유와 환유는? / 권력으로서의 기표 / 편지는 여성의 기표
2장
필요, 요구, 욕망 · 36
자크 라캉(1901~1981) · 36
라캉의 욕망 이론 · 38
큰 타자 · 41
‘오브제 프티 아(대상 a)’ · 45
발레리나 / 아갈마 / 맥거핀과 김종인
부분대상 · 55
쥐스킨트의 『향수』 / 플라톤의 『향연』 /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
시선 곧 대상 a · 63
욕망의 시선 / 뒤라스의 『롤 베 스타인의 황홀』
3장
주이상스 · 69
「보헤미안 랩소디」 · 69
jouissance 대 enjoyment · 71
쾌락 원칙 너머 / 베르니니의 조각상
주이상스는 인간 욕망의 원형 · 74
상실된 대상 / 현실태 아닌 잠재태
4장
남근 · 78
팔루스 · 78
상징적 거세와 권력 / 슈퍼맨의 정체를 알려고 하지 말아요
햄릿과 남근 · 88
가장 위대한 작품이며 비극의 원형인 『햄릿』 / 오필리어 / 종부성사 없는 죽음 / 오이디푸스와 햄릿의 차이점 / 거부된 남근
애도와 우울 · 99
『안티고네』, 애도의 정치학 / 애도와 범죄
잠재성과 권력 · 106
가능성이 현실성보다 강력하다 / 모든 권력의 자리는 텅 비어 있다
5장
상상계, 상징계, 실재계 · 111
상상계 · 113
거울 단계 / 포르트-다 게임
상징계 · 119
아버지의 이름 / 아들은 어머니의 남근 / 슈레버 케이스
실재계 · 129
오르페우스 / 풍크툼과 실재, 그리고 앤디 워홀 / 여자의 장신구 / 착시화 / 노자의 항아리
욕망의 대상은 공허 · 142
사랑의 불가능성 / 성관계는 없다 / 여자는 남자의 증상 / 파르지팔
6장
판타지, 허구 · 156
사회계약 · 156
두 종류의 허구 / 언어의 속성 또한 허구 / 허구를 포기하면 현실 자체가 무너져
대상 a와 코카콜라 · 162
잉여가치-잉여쾌락-초자아 / 코크의 몰락
화폐와 주체 · 167
쓰고 나서 라캉과 숭고 미학 · 172
쓰고 나서 라캉과 숭고 미학
저자소개
박정자
출판사리뷰
이것만 똑바로 알아도
인문학자들이 이따금 신조어를 만드는 일이 있긴 해도, 그들의 용어는 근본적으로 일상언어와 다르지 않다. 단지 “이러이러한 뜻으로 쓰자”고 엄정하게 정의하고 쓸 뿐. 본래의 문맥을 떠난 인문학자들의 용어는 그래서 오독과 오용의 위험을 숙명처럼 안고 있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이 ‘동양의 가치를 되찾자는 주의’라고 정반대로 이해하고 쓰는 게 단적인 보기다. 라캉이야말로 그런 오독·오용의 가장 대표적인 사상가 중 하나다. 예를 들어 그의 ‘실재계(the Real)’가 ‘현실세계(the real)’로 오해되는 식인데, 기실 실재계는 현실 너머의 절대적 공허, 죽음의 심연이다. 오죽하면 라캉 자신 ‘주이상스(jouissance)’와 ‘오브제 프티 아(objet petit a, 대상 a)’만은 번역하지 말고 그대로 써 달라고 신신당부했을까.
“프랑스어 주이상스에는 (영어 enjoyment와 달리) 절대적 오르가슴으로 해석될 수 있는 완전한 쾌락이 들어 있다. 통렬한 고통이나 공포에서 느낄 수 있는 고도의 성애적(性愛的)인 죽음 충동이다.”
“‘오브제 프티 아(objet petit a)’는 직역하면 ‘작은 타자인 대상’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작은 타자는 큰 타자와 대칭적인 개념은 아니다. 어쩌면 전혀 다른 영역의 개념이다. 대상 a는 우리가 상실한, 그리하여 도저히 다시 도달할 수 없는 욕망의 대상을 뜻한다.”
“상상계와 상징계만이 우리의 현실을 이루는 구체적이며 동시에 추상적인 세계다. 상상계 안에 있던 유아기의 아이는 언어를 습득한 이후 평생 동안 상징계 안에서 살아간다. 실재계는 ‘실재’라는 말뜻과는 달리 우리의 현실 세계가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는 초월적 세계 또는 죽음의 세계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지금 우리의 교수님들은, 또는 우리 대학 다닐 때 교수님들은 왜 이렇게 차근차근 풀어 설명해 주지 않았을까 억울하다고? 지금 당장 이 책을 읽지 않으면 더 억울할 것이다.
라캉도 예견할 수 없었던 코크의 몰락
박정자의 다른 책들이 그렇듯이 이 책도 ‘욕망’과 ‘소비’의 현대사회 비평의 연장선상에 있다. 책은 라캉이 분석한 애드거 앨런 포의 단편 「도둑맞은 편지(Puloined Letter)」를 실마리로 하여, 라캉의 30년 공들인 탑인 『에크리(Ecrits)』(1966)의 여러 개념들로 독자를 안내한다. 여행길 곳곳에서 라캉 자신과 라캉 연구자들이 보기로 들거나 주목한 서양의 문학·예술 고전들은 물론 동양과 한국의 고전(『노자』)과 설화(주몽 등)를 페이지마다 만나게 된다. 히치콕과 ‘맥거핀’(그리고 정치인 김종인), 앤디 워홀, 퀸과 「보헤미안 랩소디」 같은 더 낯익은 이름들도 등장한다. 그리고 라캉도 코카콜라를 마셨을 테지만 결코 예언하지 못한, ‘다이어트 코크’의 몰락.
카페인 프리의 다이어트 콜라가 나왔다. 원래 우리가 음료를 마시는 것은 세 가지 이유 때문이다. 갈증을 해소해 주거나, 영양학적 가치가 있거나, 맛이 있거나. 그런데 카페인 프리 다이어트 콜라의 경우, 애초부터 영양학적 가치는 없었고, 갈증을 해소해 주지도 않으며, 맛의 주요 요소였던 카페인 또한 제거되었다. 남아 있는 것은 순전히 겉모습뿐이고, 결코 물질화되지 못한 가공적 약속일 뿐이다. 그러니까 카페인 프리 다이어트 콜라를 마신다는 것은 ‘실질적으로 아무것도 아닌’ 음료를 마신다는 것과 같다. 원래 숭고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아우라가 일시에 몰락하면 남는 것은 쓰레기뿐이다. 타자로부터 대상 a가 떠나 버리면 우리의 욕망도 마치 김빠진 콜라 같아진다.
다음은 ‘숭고’다
평생 동안 상징계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알지 못하는 사이에 실재계의 거대한 그림자 아래 살아간다. 거기 있지만 알 수 없고 형언할 수 없고 넘어설 수 없는 라캉의 실재계는 칸트의 ‘물 자체(thing itself)’나 쇼펜하우어의 ‘의지(will)’와도 닮았다. 숭고(the Sublime)다.
숭고한 대상은 기본적으로 공허이고, ‘기의(記意) 저편의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공허이지만, 이 공허가 없다면 아무런 의미도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이 ‘저 너머’를 의미하는 대상들은 그러니까 무한하게 매력적이고, 두렵고, 위압적이고, 혹은 그저 단순히 숭고하다. 숭고의 대상은 허공(void)이라는 라캉의 기본 개념은 칸트의 숭고 미학 이론을 강하게 떠올린다. 숭고의 대상은 언어로 재현할 수 없는 비(非)상징적 세계라는 것 역시 칸트의 연장선상에 있다. (쓰고 나서)
책의 후기는 자연스럽게 다음 책을 예견한다.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우파 인문학자 박정자, 그의 ‘현대사상 도장깨기’는 계속된다.